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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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시선]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대책, ‘내화격벽’ 설치 의무화가 해답이다

  • 작성자: 스펙스테크
  • 관리자: 2025-10-16 10:04:19
  • 조회수: 50

 

박지현 前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現 서울대 전기안전 보호소자연구센터 수석연구원)

 

 

박지현 前 전기안전공사 사장

 

지난 9월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에서 발생한 무정전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로 인해 국가 전산망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정부와 관계기관은 현재까지도 복구와 원인 규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완전한 복구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에서 안타까웠던 점은 일부 언론이 초기 진화 과정에서의 소방 대응을 비판하며, ‘할론가스 소화기 사용으로 진화 실패’라는 단편적인 시각만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술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해석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화재 시 짧은 시간 내에 셀 내부 온도가 800~1000℃까지 급상승하는 ‘열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을 보인다. 이때 발생하는 고온과 가스 방출, 화염은 일반 소화약제(할론, CO₂, 분말 등)로는 진화를 어렵게 한다. 실제로 국내ㆍ외 여러 시험에서 기존 전기화재용 소화기(예: 할론, HFC-227ea, N₂ 등)는 열폭주 상태의 배터리 진화에 거의 효과가 없거나 일시적인 냉각에 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배터리 화재용 소화설비 성능기준’을 마련했으나, 실제 성능 기준을 충족하는 소화기 제품은 아직 시중에 존재하지 않는다. 배터리의 구조적 특성상 내부에서 연쇄 반응이 발생하면, 소화약제가 도달하기 어려운 셀 내부까지 냉각하거나 반응을 차단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에 있어 가장 현실적이면서 효과적인 대응책은 ‘분리 및 확산 차단(Containment & Isolation)’, 즉 내화격벽(Fire Partition Wall)의 설치다.

 

내화격벽은 배터리 랙 사이에 내화재(耐火材, Fireproof Material)를 적용해, 열과 화염의 전이를 지연·차단하는 설비다. 내화 성능 1시간 이상(시험 기준: KS F 2257-8, ISO 834)을 확보하면, 인접 배터리로의 열확산 속도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

 

특히 UPS나 ESS의 모듈·랙 단위로 격벽을 구성하면, 일부 셀에서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랙으로의 열적 전이(Heat Propagation)를 억제해 전면 화재로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실제 해외 데이터센터 설계 기준을 보면, NFPA 855(ESS 설치 기준), UL 9540A(열폭주 시험 표준) 등에서 배터리 랙 간 최소 1시간 내화구조 또는 3피트(약 0.9m) 이상 이격 설치를 권고하고 있다. 유럽 EN 62619 및 IEC 62933 표준 역시 화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셀 간 차단 구조 또는 격벽 적용을 필수적으로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2년 카카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이번 국정자원관리원 화재 모두 배터리 룸 내부에 내화격벽이 없거나, 랙 간 열전이 차단 대책이 부재했던 것이 피해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만약 당시 일부 랙이라도 내화격벽으로 구획되어 있었다면, 화염과 열기가 인접 배터리로 확산되지 않아 전체 시스템이 붕괴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업계에서는 ▲배터리 안전관리 강화 ▲소화설비 고도화 ▲화재 안전성 평가 ▲BMS 기반 이상 감시 ▲모듈 단락 감지 등 다양한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공공기관·국가 기반시설처럼 단 한 번의 화재로도 사회적 피해가 막대한 시설의 경우, 내화격벽 설치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열폭주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화격벽 설치를 통해 ‘하나의 랙이 전소하더라도 전체를 지켜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춘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복구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AI 인프라 확산, 데이터센터의 급증,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UPS·ESS의 보급이 빠르게 늘고 있는 지금, ‘내화격벽 설치의 의무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안전기준이 되어야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시대, 이제는 ‘열폭주 차단과 더불어 ‘열확산 방지’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내화격벽 설치가 그 출발점이다.

 

출처 : 전기신문(https://www.electimes.com)